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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이론공부

[ 영화추천 ] 영화 ‘ 헤어질 결심 ’ 이 말하는 사랑의 의미

by 창조하는 인간 2022. 8. 26.

이제는 치명적인 스포일러가 있어도 괜찮은 시점이 아닌가 싶어서, 스포일러가 조금 담긴 리뷰를 쓰게 되었습니다. 

한번 이상 관람하고 읽어주시면 좋겠습니다. 안 그러면 이게 무슨 말일까... 싶을 테니까요ㅎㅎ

 

헤어질 결심의 함축적 포스터 (출처 : 다음영화)

 

한국 영화계의 산업화의 순기능 

한국영화사에서 가장 유의미한 성과를 얻었다고 보이는 작품이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라고 생각했는데, 과연 그것이 봉준호 감독만의 압도적 성과인가를 묻는다면 그것은 아니다. 한국에는 정말 좋은 감독들이 대거 포진하고 있다. 물론 처음부터 이랬던것은 아니다. 아시아 영화사를 들여다봐도 우리는 다른 주변 국가와 비교했을 때 다소 늦은 성과를 보이기 시작했다. 독재 정권을 거치면서 창작활동이 제한적이었던 시기도 있었고, 전후 복구 과정에서 1차 산업들의 성장도 바쁜 시기에 영화산업의 발달까지 바라면 안 되지 않았을까. 그 시기에도 훌륭한 감독들은 존재해 왔지만 한국의 위상과 시대적 배경에 의해 주목받진 못했다. 아주 아슬아슬한 명맥이 유지되어 90년대를 기점으로 폭발적으로 성장을 했다고 볼 수 있겠다.

90년대부터 시작된 대기업의 스크린 침투는 여러 측면에서 우려를 낳았다. 할리우드에서도 스튜디오의 산업화와 독과점으로 인해 독창적인 영화 색을 잃어버리게 된 전적이 있었고, 현재도 거대 자본에 의한 초대형 블록버스터들이 돈을 쓸어가면서 그런 류의 작품들 제작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미국 독립영화들을 예술영화 시장에서 보기는 드물어졌다. 이렇듯 영화가 산업인 것은 사실이지만 대기업의 산업화는 대체로 거대 자본의 유입으로 인한 획일화된 스타일을 구축할 것이라는 예측이 어느 정도 있었기 때문에 우려의 목소리가 있을수밖에 없었다. 이미 독재정권 시기에 수차례 규제라는 명목의 방해를 받았었는데, 자본이 개입되면 왠지 자발적으로 내적 규제를 일으켜 창작에 제동이 걸릴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자그마한 다양성 영화들이 상품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극장에 걸릴 수 없게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들이 생길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출처 : unsplash (작가: Kilyan Sockalingum)

실제로 대기업 자본의 투자로 블록버스터급 영화들이 제작되고, 더 나아가 멀티플렉스 상영관까지 사업을 확장하면서 끝내 개별 극장들의 수명을 단축시키고 역사의 뒤안길로 보냈으니까 그런 우려들이 틀린 것만은 아닌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팬데믹과 OTT의 공세로 그 멀티플렉스 마저 위협받고 있다..)

하지만, 영화계는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자본에 종속되어 기계처럼 찍어내는 영화들을 만들고 있지 않다. 기본적으로 대한민국에서의 영화는 스튜디오 체제의 영화라고 하기에는 여전히 날 것의, 에너지가 넘치는, 영화 인력들에 의한 영화 현장이기 때문에 몇몇의 다양한 영화들은 살아남아 관객과 만날 수도 있었고, 또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자 대기업 역시도 다양성 영화에 대한 존중을 잊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부산국제영화제가 성공적으로 자리매김함으로써 다양한 영화제들이 생겨나고, 영화제를 통한 인재 발굴도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있는 중이다.  이렇게 나름 좋은 점만, 나열해 보았다. 

 

왜 이런 이야기를 장황하게 하느냐라고 묻는다면, 짐작하듯 그 소용돌이의 중심에서 함께 성장하고 한국 영화의 위상을 올리는 것에 일조하고 있는 감독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이다. 대기업의 투자지원을 아낌없이 받는 감독이기도 하지만, 대중적인 영화의 색채보다는 작가주의적인 영화의 색채를 강하게 띄는 감독이기 때문에 단순히 스타 감독이어서 대기업이 지원을 하는 수준이 아님을 이야기하고자 영화 산업화의 순기능에 대한 설명을 먼저 하게 되었다. 자본이 있어서 좋지 않은 점은 다양성 영화들을 묻고 대중이 좋아할 만한 영화를 공장에서 찍어내듯 배출할 것이라는 점이었는데, 오히려 자본이 있어서 좋은 점은 다양성 영화에 과감한 투자를 할 수 있다는 아이러니가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그 접점에서 엄청난 시너지를 발현하고 있는 스타 감독들의 경우에는 대중성도 어느 정도 확보한 상태이기 때문에 예술과 대중을 동시에 잡고 간다는 장점이 생겼다. 그래서 그렇게까지 망하지 않을 것을 예측하고 하는 사업이자 투자가 된 것이다. 물론.. 가끔 그럼에도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법한 영화는 나오기 마련이다. 

 

영화제작자의 입장에서는 관객이 많이 들 것 같은 각색과 비주얼 설계가 중요하겠지만, 영화 연출자의 입장에서는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명확하게 표현하는 것이 좋다. 그래서 자신만의 확고한 스타일을 가지고 있으면서 작품이 거듭될수록 발전하고 그 세계관을 확장해 나가는 방식이 영화사적인 측면에서도 좋은 것이다. 

그런 점에서 대한민국은 기반이 약했던 과거를 뒤로하고 90년대부터 시작해서 차근차근 기반을 쌓아 올린 훌륭한 감독들을 많이 보유하게 되었고, 감독들의 필모가 이제 세계의 영화들과 견주어도 처지지 않을 만큼 성장하게 된 것 같다. 그러면서 관객 수준도 많이 향상되었다. 

 

헤어질 결심 현장 사진 (출처 : 다음영화)

박찬욱 감독에 대하여.. 

박찬욱 감독의 영화는 범대중적인 작품은 흔하지 않지만, 분명 한국의 씨네필들에게는 여러 번 씹고 뜯고 맛보고 싶은 영화일 것이다.  세계속에서만 봐도 봉준호의 기생충 이전에는 박찬욱의 올드보이가 있었다. 이 블로그에서도 가장 인기가 많은 글이 올드보이의 할리우드 리메이크 사례인데, 올드보이를 처음 보았을때 충격은 지금도 생생하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에 나타나는 욕망의 표현방식은 자극적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여러번 보기 힘든 순간을 보여주기도 했는데, 그 시기보다 조금 더 나이가 들어서 보니 또 다른 느낌이 있었다. 하지만 올드보이는... 다시 봐도 충격... 

 

기생충 이후 불어닥친 팬데믹의 시기에 어째서 이토록 한국의 콘텐츠가 주목받게 되었는지.. 오징어 게임이 전 세계를 휩쓸고, 배우 윤여정이 골든글러브 여우조연상을 수상하고, 배우 송강호가 칸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 하는 등 경사가 참 많은 와중에 깐느 박도 그 몫을 톡톡히 해냈다. 오랜만에 칸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룬 것이다. 칸이 한국을 좋아하나 싶은 정치적 오해까지 할 정도로 기쁜 소식들인데, 영화를 보고 나니 너무 당연한 결정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 수상하게 된 헤어질 결심이라는 영화는 기존의 박찬욱 감독 영화에서 보던 불쾌하고 찝찝하고 축축했던 육체적 욕망이나 에로스적 사랑의 투시가 없다시피 한 영화였다. 색채를 다루는 방식이나 공간의 분위기를 자아내는 미술 형태나 배우를 포착하는 구도 등 분명 박찬욱 영화가 맞는데, 처음 보고서는 몹시 혼란스러웠다. 어떤 경지에 오르게 된 거장의 작품을 만난 느낌이었다. 물론 살인사건을 중심으로 구성되었고, 피가 낭자하는 장면들이 아주 없진 않지만 기존 영화들에 비하면 이건 정말 순한 맛이었다. 그런데, 여운이 너무도 길게 남는 영화였다. 올드 보이보다 더... 

 

헤어질 결심 포스터 (출처 : 다음영화)

 

세 번의 영화 관람, n차 앓이의 시작 

   첫 번째는 처음 만나는 영화의 흐름을 따라가느라 해준의 시점에서 훨씬 더 많은 부분을 보았고, 서래를 이해하지 못했다. 이주임... 아내에 대한 배신감이 컸다.  유교 걸인지라 해준과 서래의 사랑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서래가 남편을 죽였을까 죽이지 않았을까? 하는 의심과 불안만 가득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안타까움이 조금 덜했던것 같다. 

   두 번째는 결말을 알고 보는 상태라 두 사람의 감정이 처음 보였다고 생각되는 시점부터 갑자기 서래의 모습만 가득 보이게 되는 기현상을 겪게 된다. 결혼이라는 제도나 내가 가지고 있는 신념이나 옳다고 믿고 있던 것들이 잔잔하게 퍼지는 수면 위의 파동처럼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내도 똑같이 바람을 핀 걸 테니 이 둘의 사랑도 면죄부를 줘야 하는 거 아니냐며 궤변을 늘어놓고 싶어졌다. 그래도 불륜은 안된다. 살인자도 안돼.. 

  세 번째는 다른걸 다 떠나서 아내는 과연 바람을 피운 걸까?  무엇이건 안정을 원하는 아내였다. 퍼센트처럼 수치화된 방식으로 딱딱 떨어지는 이야기를 하는데 이를 남편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꼿꼿함을 좋아하는 남자니까. 분명 둘은 부부가 맞고 잘 맞았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의 배신에 대한 복수로 이주임을 이용했을 수도 있겠다. 남들이 보았을 때는 자신들도 바람처럼 보일 수 있다는 걸 의식하지 못하며, 올곧게 자신의 삶을 자신의 생각대로 관철하는 느낌의 사람. 내로남불이지 않을까? 자기 확신이 가득 찬 사람들에게 보이는 특징이 아니었나 싶다. 그리고 해준이 너무 비겁하게 느껴졌다. 박해일의 연기 수준은 예상을 뛰어넘는 듯하다. 탕웨이를 캐스팅하기 위해 주인공을 중국 여자로 설정한 것은 신의 한 수였다.  

 

헤어질 결심이 나에게 주는 영감 

영화를 통해 이야기를 한다는 것,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준다는 것, 그것의 즐거움을 다시 깨닫게 된 거 같다.  

영화를 보면서 이렇게도 생각해볼 수 있구나 하며 나의 숨겨진 모습을 발견하는 것이 흥미로웠다. 

헤어질 결심의 해준의 시선 (출처 : 다음영화)

개인적으로 분석해 본 헤어질 결심의 상징 

길게 장황하게 쓸 자신이 없어서, 간단하게 쓰거나 질문을 남기는 방식으로 써보려 한다. 

 

1. 불면증과 호흡

세상에서 가장 야릇했던 숨쉬기 장면. 오히려 초반 부부관계 장면보다 더 에로틱하게 느꼈던 것 같다. 

단순히 숨소리를 맞춘 것뿐인데, 숨, 공기 , 호흡 말고 또 뭔갈 나눈 느낌.

이 지점에서 박찬욱 감독이 더 높은 경지로 올라가 버린 거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2. 관찰과 관음 

망원경으로 지켜볼 때의 기분을 잘 안다. 공연을 오페라글라스로 보면서 사랑에 빠지는 감정을 체험한 적 있다.

내 프레임 안에 그 사람만 가득 보이는 경험이었는데, 영화에서 그 장면을 보니 잊고 있던 감각이 떠올랐다. 

훔쳐보는 떨림, 근데 그게 좋아하는 대상이라면 심장이 가만히 있지 못할 것이다. 

관음적인 시선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어서 몹시 변태가 된 기분이지만, 어쩔 수가 없다. 

어떤 상상력을 보태는 거 보다도 그냥 눈에 보이는, 훨씬 가까이 보이는 그녀의 얼굴 만으로도 이건 이미 게임 끝.

둘은 처음부터 서로에 대한 관찰을 쉬지 않았다. 온 신경이 그쪽에만 있는듯.. 

3. 플라토닉과 에로스

부부는 좋을 때나 싫을 때나 무조건 일주일에 한 번씩 해야 한다는 지론이 있는 아내와 그 어떠한 육체적 교류는 없이 키스 정도 해본 여인인데 사랑의 감정을 후자와의 교류에서 본거 같다. 진짜 사랑은 어떤 형태를 하고 있는 것인지 혼란스러워졌다.

아내와도 분명 좋은 관계고 최초에는 뜨겁기까지 한 사랑이 있었을 것인데... 

가장 철학적이고 심오한 설정을 해둔 느낌이었다.

의무적이고 횟수 지향적인 관계는 사랑을 견고하게 한다기보다는 이미 없을지도 모르는 알맹이를 감추기 위한 벽 같이 느껴졌다.

그걸 굳이 들춰서 확인해보고 싶지 않은 채, 단단하게 옭아매는 무의미한 방어벽 같은 것이다. 

진짜 마음이 있다면 그런 거 다 없어도 내 모든 걸 거짓 없이 말할 수 있고, 불면증이라는 내 문제를 해결해주려 신경 써줄 수 있고, 여러 개인 내 주머니에 뭐가 어디에 들었는지를 알아야 하고, 내가 일을 할 때는 어떤 신발을 신으며, 어떤 방식으로 일을 하는지 알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아내는 남편의 말만을 믿었지만, 젊은 여자가 자살해서 남게된 늙은 남편 사건은 없었으니까.

4. 안개와 옷 : 믿음과 의심 

안개가 둘러싸인 이포에서 살아간다는 건 의심을 할 수 없는, 의심조차 하지 않았던 어떤 진실이

안개에 감춰져 희미한 상태로 살아가고 있는 것을 뜻하는지도 모르겠다.

늘 명확하려 했고 똑 부러지는 성격의 아내와 남편이지만

결국 안개에 둘러싸인 이포에서 곰팡이가 피어오르듯 곪아가고 있는 관계였더라는 의심이 든다. 

그리고 서래의 죄는 사건을 조사하는 해준이 어떻게 보고자 하느냐에 따라 죄가 있었는데 없어지기도 하고, 없는데 있어지기도 한다. 

서래의 옷색깔로도 이를 은유하고 있는데, 파란색으로 보이고 녹색으로도 보이는 그 옷은 어떤 색으로 보이는지가 중요한게 아니라 어떤 색으로 보느냐가 중요해지는거 같았다. 정확하게 이렇게도 저렇게도 보인다라고 관찰했던 사람은 해준이었다.

그렇지만 서래의 죄에 관해서는 그런 유연함을 발휘하지 못한채 보고 싶은 것만 보려 했다. 

믿음으로 바라보던 시각이 붕괴되고 의심이 가득 차올랐을 무렵부터 이미 이 사랑은 파국이다. 

 

헤어질 결심 서래의 시선 (출처 : 다음영화)

5. 향기와 담배

사랑하는 사람이 내뿜는 담배 연기를 얼마나 감당할 수 있는가?

감당해야 하는 문제라고 인식한다면 사실 아직 매료되지 않은 게 아닐까.  

서래의 향기에는 분명 사건의 진실을 은폐하려는 시도가 있었겠지만, 그 향기를 오로지 순수하게 음미하기로 결정한 것은 해준이었다. 

덕분에 그녀의 향기에 담배향이 섞여도 그에게는 전혀 문제될 것이 없었다. 

사랑은 눈으로도, 향으로도, 소리로도 찾아올 수 있음을 알 수 있었다. 

6. 운동화와 구두

사건을 수사하기 편한 운동화와 단정하고 번듯해 보이지만 불편한 구두.

이건 마치 서래와 아내를 비유하는 느낌이었다 

7. 인공눈물과 불빛

해준은 불면증에 인공눈물까지 달고 살 정도로 눈알이 혹사당하고 있는데.. 그래서 밀려오는 편두통으로 밝은 불빛을 바라볼 수 조차 없을 텐데.. 서래의 이마에 붙어있는 램프 불빛을 피하지 않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진실을 보기 위해 뿌옇게 된 눈을 씻어주는 인공눈물을 자주 뿌렸다라고도 볼 수 있는데 눈이 맑아지건 흐리건 간에 보고 싶은 것만 본 건 사실이다. 

8. 반지와 스마트워치

결혼반지가 의미하는 바는 '나 이미 임자가 있어요' 일 것이다. 그런데 스마트워치는 사실 요즘 사람이면 다 한 명씩 차고 다니는 물건이다.  그걸 해준은 수사과정에서 서래를 관찰할 때 사용했고, 이포에서는 서래가 해준을 관찰할 때 쓰게 된다.

일종의 대물림을 한 느낌. 아니면 서로의 손목에 채워준 느낌? 마치 수갑을 사이좋게 나눠 차는 것처럼. 

사랑을 하는 시점에 항상 스마트워치가 있었다.

그래서 전반부는 남자가 후반부는 여자가 사랑을 관찰하고 그 사람을 향한 목소리를 남기게 된다.

 

9. 초밥과 볶음밥 그리고 핫도그 

해준은 요리를 잘하는 남편이다. 아내를 위해 따뜻한 국물 요리를 하고, 피가 흥건한 생선의 살을 발라낼 수 있는 남자다. 하지만 아내가 초밥을 먹고 싶다고 할 때는 따뜻한 걸 먹이고 싶고, 아무 초밥이나 먹고 싶지 않다는 단호함을 보인다. 반면 서래의 취조 현장에서는 비싼 초밥을 함께 먹는다. 일종의 구애 장면이 아니었을까. 게다가 그녀에게 고향의 맛을 느끼게 해 주겠다며 따뜻한 볶음밥을 만들어 준다. 물론 고향의 맛은 아니었지만, 서래는 그 남자의 마음을 진심으로 받게 된다. 금방 식어버릴 볶음밥인데도..

나중에 두 번째 남편 살해 용의자로 붙잡혀 취조를 당할 때 받게 된 핫도그를 보며 무너지던 서래의 표정이 잊히지 않는다. 

 

10. 산과 바다 

높은 곳을 싫어하는 바다인이지만 결국 산을 보러 온 서래. 

외할아버지의 유산이라는 그 산은 해준을 상징하고,  

남편이 죽은 산은 첫 남편을 의미한다고 한다.

산은 어떤 것을 감추기에 적합한 공간이 아니다. 끝끝내 찾아낼 확률이 높다.

하지만 바다는, 깊은 바닷속은 찾기가 쉽지 않다. 아무도 찾을 수 없는 심연의 공간이 되는 것이다.

아무에게도 드러내고 싶지 않은 사랑이었던 걸까.. 

그 폰은 바다에 버려요 라는 대사가 계속 맴도는 와중에.. 

n차 관람을 할수록 해준을 믿을 수 없게 되었다.  

11. 언어와 단어 

의사소통이 원활하기 위해서 필요한 건 유창한 언어일까? 

엉성한 단어 만으로도 의사 전달은 가능하지만 원활하다고 할 수 있을까? 

서로 북을 치며 마음의 울림을 주고받았던 게 아닌가? 

해준은 처음부터 서래의 말을 진짜 다 알아들은 걸까?

마지막엔 왜 알아듣지 못했을까...

12. 자부심과 품위 

형사로써 자부심과 품위가 있던 그 남자는 붕괴되었다.

자부심은 처음부터.

그리고 끝내 잃어버린 품위는 돌아오지 못했다. 

어쩌면 붕괴되었다고 말하는 그 시점부터 붕괴가 시작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헤어질 결심, n차 앓이의 시작

 

13. 해결과 미결 그 사이 

사건의 해결은 간단하다. 범인이 체포되는 것이다. 미결 사건은 아직 범인이 체포되지 않은 사건이다. 

하지만, 해준에게 사건의 종결이 곧 해결은 아니다.

범인이 체포되어 종결되어도 진범이 따로 있다면 그 사건은 여전히 미결인 상태인 것이다.

물론 형식적으로는 종결로 마무리 짓는 공무원이긴 하다. 

해준은 벽면 가득 붙은 미결 사건의 사진들을 보며 반드시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우는 정석적인 형사이다. 

때로는 그것이 지나친 집착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사건에 파고들고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게다가 사건이 종결된 것일 뿐 해결된 것이 아니라고 생각된다면 언제고 다시 미결이 되어 관련 사진이 벽면에 붙을 수 있다. 

서래는 해준에게 미결이 되고 싶었다. 이미 종결된 마음이지만 해결되지 않아 다시 미결될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게 이 모든 여운의 시작점이 될 줄은... 

n차 앓이는 영화가 끝날 무렵부터 시작된 것이다. 마침내.

관객에게도 헤.결.은 해결이 아니라 미결인 셈이다. 이런 말장난... 

 

 

그 외에도 포스터나 홍보사진에 단일한 인물의 사진보다는 서로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혹은 누굴 바라보고 있는지를 명확하게 알려주는 사진들이 많이 올라와 있다. 나는 이 사진들이 이 영화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준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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