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이론공부

대한민국 애니메이션의 역사와 현황

by 창조하는 인간 2021. 12. 18.

한국 애니메이션의 효시는 TV CF이다. 최초의 애니메이션

CF는 럭키 치약 CF였다. 1967년 신동우 화백이 소년 신

문에 연재하고 있던 <풍운아 홍길동>을 원작으로 제작한

한국 최초의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인 <홍길동>이 개봉한다.

중략

신동헌 감독의 작품 <홍길동>>의 선전에 혹한 세기상사는

1960년대 애니메이션 제작을 주도하며 <손오공>,<황금철인>,

<홍길동 장군>1970년대부터는 미국의

장편애니메이션(대부분 디즈니)을 수입하기 시작한다.

 

(출처 : 최성규 , 『디지털 애니메이션의 이해』, 세종출판사, 2007, 112쪽)

 

 

https://www.youtube.com/watch?v=F0wtygQT1J0 

 

우리의 애니메이션 역사에서 그 시작은 다른 게 아니라 CF 였음을 알 수 있다.

CF라 함은 스토리보다는 제품의 장점을 극대화시켜서 사람들에게 홍보하는 내용으로 구성된 영상이었을 것이다.

연예사업이 그렇게 발달하지 않았을 무렵이라 지금 흔히 볼 수 있는 연예인들의 광고가 아닌 그림 광고였다고 한다.

1970년대부터 대부분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수입하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이는 2차 대전 후 미국에 의해 애니메이션이 강제로 수입된 일본에 비해 약 20년이나 늦은 수입이었다.

20년의 차이는 70년대 중반 쏟아지는 일본 애니메이션을 막을 방법이 없었고, 우리나라 애니메이션 시장은 침체에 빠진다.

그것이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실정이다.  

70년대 당시에도 TV 애니메이션의 대부분은 일본의 것이었는데, 지금도 다르지 않다.

그 와중에 <로보트 태권브이>가 나와서 한국 애니메이션 부활의 신호탄이 되어 그 이후에도 김청기 감독의 많은 작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다만, 당시 시대적으로 독재정권 시기라서 검열이 심했기 때문에 애니메이션에 반공을 넣음으로써

국가적 지원도 받을 수 있었고 검열에서도 조금 자유로울 수 있었다.

 

로보트태권브이 포스터 (출처: 위키백과) 

이렇게 수입된 애니메이션만 우리에게 걸림돌이 된 것은 아니었다.

1970년대 후반에서 1980년대까지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많은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시기 였다.

이 시기에 그토록 많은 애니메이션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지금껏 한국 애니메이션계의 고질적인 문제를 야기시킨 하청 작업 때문이었다.

전 세계의 약 30%의 애니메이션을 제작해내는 국가로 손꼽힐 만큼 많은 하청작업을 해왔다.

문제는 이 하청작업으로 인해 국산 애니메이션의 자체 기획능력이 저하되었을 뿐만 아니라 콘텐츠의 발굴에 대한 안일함이 생겼고,

현재까지 이어지는 국산 애니메이션 산업의 침체까지 불러왔다.

국산 애니메이션을 제작해서 방영하는 것보다도 하청작업을 해주고 그 이윤으로

좀 더 싼 값에 외국 애니메이션을 수입하는 것이 훨씬 저렴해서 TV 방송사에서는 더 이상 국산 애니메이션에 대한 투자를 하지 않았다.

 

이 시기는 한국 애니메이션 史에 있어서 씻기지 않는

오명을 남긴 시기이기도 한데, 하청 받던 일본이나

미국의 애니메이션 중 인기 있던 작품들을 표절하기

시작한 것이다.

 (출처 : 최성규 , 『디지털 애니메이션의 이해』, 세종출판사, 2007, 117쪽)

 

이미 만들어져 선풍적인 인기를 끈 작품의 제목만 바꿔서 그대로 베낀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그런 식으로 만들어진 애니메이션들 때문에 순수 창작 애니메이션의 표절 여부에 대한 의심을 거둘 수 없다.

잘 만들어졌다면 분명히 이것저것 베낀 것이라며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의심의 불씨를 꺼뜨릴 수 없어

치명적인 오명을 남기게 된 것이다.

 

그러다가 1987년부터 TVTV 방송이 앞 다퉈 창작 애니메이션을 내놓기 시작한다.

1988년 올림픽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에 국가적으로 민족적 주체를 찾자는 분위기를 탄 것이다.

<떠돌이 까치> < 달려라 호돌이> <아기공룡 둘리> <독고탁의 비둘기 합창> 등등 지금까지도 유명한 애니메이션들이 이때 등장하게 된다.

그리고 1988년 국산 애니메이션 최초의 드라마 형태의 TV 애니메이션 시리즈 <달려라 하니><천방지축 하니>는 대한민국 TVTV 애니메이션계의 획을 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외에도, <옛날 옛적에>, <날아라! 슈퍼보드>,<태권 동자 마루치>, <머털도사 시리즈>와 같은 지금 들어도 알만한 만화들이 모두 이 시기에 만들어진 것들이다.

 

떠돌이까치 (출처 : http://cfs16.tistory.com/image/36/tistory/2010/05/31/08/09/4c02f045c0916)
달려라 하니 (출처 : 나무위키) 

 

반면 극장용 애니메이션계는 1976년 로보트 태권V 이후로 그렇다할 작품이 나오지 않았다.

TV애니메이션의 탄탄한 기반을 바탕으로 자신감과 좋은 기획력을 가진 작품이 나와야 하는데,

TV 애니메이션 자체가 하청 작업으로 인해 자체 기획 능력을 잃은 데다가 각종 표절은 독창성마저 해치고 말았다.

미국이나 일본, 특히 일본 같은 경우는 지금도 침체된 영화시장을 살리는 것이 TV애니메이션의 극장판들인데,

탄탄한 지지기반을 두고 흥행에 성공하고 있다. 한국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들은 주요 관객층인 20대를 염두에 두고

성인 애니메이션을 통해 애니메이션이 더 이상 아이들의 소유물이 아님을 증명하고 싶어 했지만,

다양한 홍보 전략으로 호기심을 자극, 극장가를 찾았던 관객들에게 수준 낮은 영상물을 선보임으로써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관객들은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쌓게 된 것이다. <블루시걸> <아마게돈> 등이 그것이다.

 

영화 아마게돈 포스터 (출처 :다음영화) 

1998년에는 <누들누드>OVA시장에 희망을 주는가 했지만 안심할 수 없는 것이

일본 OVA시장처럼 판매가 아닌 대여를 중심으로 하는 시장 형성이 이루어져서 그렇게 큰 성공이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김대중 정부 들어서 문화적 투자를 많이 하다 보니, 남북 합작, 순수 창작 등의 애니메이션계에도 막대한 투자가 유치되었다.

일본과의 합작형태에서 성공한 경우도 있는데 2002년 탑블레이드의 경우가 그렇다.

그리고 만화로 엄청난 성공을 거둔 <그리스 로마 신화 -올림포스 가디언>TV전파를 타면서 인기를 얻게 된다.

그 뒤로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었지만 실패한 <원더풀 데이즈>는 작화 퀄리티에서 만큼은 성공 가능성을 보여줬고,

<강아지똥>, <오세암>, <마리이야기> 등 해외 영화제에서 수상한 작품들이 속속들이 등장했다.

<아치와 씨팍>, <천년여우 여우비> 등 중간중간 계속해서 한 두 작품 정도는 끊임없이 나왔고,

최근 <마당을 나온 암탉>, <돼지의 왕>, <소중한 날의 꿈> 등 예전보다 나은 모습의 애니메이션 영화들이 나왔다.

 

마당을 나온 암탉 포스터 (출처 : 위키백과) 

그리고 컴퓨터 기술의 발달로 지금까지의 셀 애니메이션 역사를 뒤흔드는 작품인

<뽀롱뽀롱뽀로로>나 <큐빅스>, <꼬마버스 타요>, <로보카 폴리>, <코코몽>, < 변신자동차 또봇> 등 컴퓨터만으로 제작된 애니메이션이 선보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그림을 그리는 기술은 필요하지 않는데도 실사 영화나 드라마보다 훨씬 못 미치는 인지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최근 OTT 플랫폼을 통해 유통되고, 유튜브 플랫폼을 타고 전 세계적으로 알려지고 있는 점은 고무적이다. 

 

 

 

 

'영화이론공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누벨바그와 장 뤽 고다르 (1)  (0) 2021.12.19
애니메이션 강국과의 비교 분석  (0) 2021.12.19
다큐멘터리 영화  (0) 2021.12.18
할리우드 스타 시스템  (0) 2021.12.18
비장르와 서사 영화  (0) 2021.12.17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