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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이론공부

누벨바그와 장 뤽 고다르 (2)

by 창조하는 인간 2021. 12. 19.

(3) 시선 

 

예전에 보았던 주말이라는 영화에서도 두드러지는 부분이었는데, 영화 틈틈이 주인공들이 카메라에 시선을 두고 이야기를 하는 듯 했다. 카메라는 사건에 개입하지 않고 인물들에게서 거리를 두고 있는데 어쩌다 한번씩 카메라를 보고 이야기 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네멋대로 해라>에서는 미셸이 차를 몰고 달리면서 카메라쪽을 보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한다.

이때 카메라는 한 칸씩 차 뒤쪽으로 빠져서 배치되는데,

카메라를 응시하고 이야기를 한것이라기 보다는 고개를 옆으로 돌리면서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하는 모습이다.

고다르 영화에서의 시선은 관객으로 하여금 영화를 보고 있다고 인지하게끔 한다.

몰입을 하는 것에 방해가 되게 하는 것이다.

 

네멋대로 해라 중 한장면 (출처 : http://m.silveri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500)

주말에 비해서 <네멋대로 해라>에서는 그 응시가 두드러지진 않은 듯하다.

미셸의 푸념 이후에 자동차 추격씬을 등장 시키면서 다시 영화속으로 관객을 끌어들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화하는 장면에서 두 사람이 등장할 땐 컷을 거의 나누지 않았지만 한사람씩 화면에 등장시키는 부분이 있다.

이때도 카메라의 옆쪽을 바라보게 하다가 갑자기 패트리샤의 시점을 보여주면서 미셸이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장면이 나온다.

지금 보면 색다를 것 없는 응시로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당시의 극영화들 중에서는 아마 배우가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한다는 것이 획기적인 장면이 아니었을까 싶다.

고다르의 영화에는 관객을 보고 말하듯 하는 장면이 여러 번 나온다.

 

<네멋대로 해라>에서 처음 훔친 차를 타고 가면서 미셸은 바다도 싫고, 산도 싫고, 도시도 싫으면 나가죽어라라고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면서 말한다. 

이것을 베르톨트 브레히트를 연상시키는 거리두기를 이용하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카메라가 그들과 동화되어 오히려 관객과 영화가 가까이 느껴지는 것이 아닌가라고 착각했었다.

그러나, 그 착각은 이미 이것이 영화라고 인지했을 경우에 생기는 거리감에서 오는 착각이었다.

다시 말해서 영화속 이야기가 허구임을 알고 그 이야기를 들여다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떠올리는 순간 영화속 이야기와 관객과의 거리가 생긴다.

고다르는 이런 응시를 영화 중간중간에 배치함으로써 관객에게 영화를 보고 있음을 깨우쳐준다.

당시의 할리우드 극영화들은 관객을 제3의 등장인물로 혹은 주인공의 시점으로 감정에 호소하고 이입할 것을 드러내는 방식이었는데,

고다르의 영화는 그렇지 않다.

주인공에게의 감정이입을 다양한 방식으로 차단시키고 영화를 객관적으로 보게 한다. 그래서 다소 지루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https://m.blog.naver.com/dahliakim/220752147670 

 

장 뤽 고다르 - 네 멋대로 해라

장 뤽 고다르 - 네 멋대로 해라 고다르의((Jean-Luc Godard) 영화 '네 멋대로 해라(A Bout de Souff...

blog.naver.com

 

(4) 카메라의 이동과 편집, 사운드

 

대사가 내러티브의 완성을 돕는다는 느낌을 받게 하는 것이 편집 때문이다.

그러나 <네멋대로 해라>에서의 편집은 매끄럽지 못하다.

대사도 어느 방향으로 흘러가는지 가늠할 수 없다.

툭툭 끊겨 보여주는 장면을 점프컷이라고 하는데, 총을 쏘아서 경찰관을 죽이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전체적으로 다 그렇게 편집되긴 했지만, 특히 연결되지 않는다는 것이 두드러지는 장면이 바로 총 쏘는 장면인데,

할리우드의 당시 영화는 어떤 형식인지 모르겠지만 총이 등장하는 영화의 액션감이라는 것은

그러니까 또렷하게 보여주는 타격감 같은 것들이 관객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고 시각적인 카타르시스를 충족하는 역할을 하는 것일텐데,

고다르는 짧게 상황 설명만 하는 것에 그친다.

 

추격씬 역시 마찬가지 였다.

자동차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달리는데, 경찰들의 오토바이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달린다.

그렇게 분절 시켜도 관객들은 쫒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미 대사로 쫒아오고 있음을 말했기 때문에

총을 쏘는 장면에서도 다 보여주지 않아도 미셸이 쏜 총에 경찰관이 맞아 죽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머릿속에서 충분히 재구성 되는 부분이고 비록 영화 속 사건 전개에 매우 중요한 장면 일지라도 하나의 사건으로 가볍게 지나간다.

그런데 이 또한 사실적이고 현실적인 장면이라는 점이다.

총을 맞은 경찰관이 슬로우 모션으로 피를 철철 흘리면서 느릿느릿한 영화적 시간을 버틴다고 해도

현실에서의 물리적인 시간은 고다르가 표현 했듯 총 맞고 쓰러지는 찰나의 순간일 것이다.

거기다가 빨리 빨리 넘어가는 편집점은 다른 일상에 초점을 맞추게끔 도와주기도 하고...

이런 부분들이 기존 극영화와는 너무도 다르기 때문에 영화의 중간부분에서는 영화가 산으로 가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착각마저 들게 한다. 그래도 틈틈이 등장하는 형사들의 모습으로 잊히지는 않게 하지만 긴장감은 떨어진다.

패트리샤와의 관계에 더 초점을 맞추는 느낌을 주었다.

 

네멋대로 해라 중 한장면 (출처 : http://m.silveri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500)

 

이렇게 점프하는 컷들은 개별적으로 보면 생각보다 오랜 시간 연속성을 가지고 있다.

한 컷의 시간이 길다는 말이다.

매끄러운 편집을 위해서 다각도로 찍어서 빠른 박자의 편집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시선에서의 착각이 들 정도로 등장인물 옆에 붙어서 꽤 오랫동안 들여다보게 한다.

한 컷 안에서는 대사가 끊어지질 않으니 더 현실감이 있다.

감독이 쓴 대사인지 배우의 일상대화인지 혼란스러울 정도로 자연스럽다.

그러다가 그 한 컷 한 컷 사이의 연결점이 점프컷이 되다보니 몰입에 방해를 받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카메라의 행동반경이 좁다.

고개를 돌리는 듯 한 패닝으로 전체적인 풍경을 보여주는 부분이 많고,

포지션 자체의 이동은 심하지 않았다. 한 곳에 카메라를 두고 2시간짜리 공연을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고 있었다.

 

뚝뚝 끊기는 편집 점에 비해 배우들의 연기가 일관적이고 모든 동선과 시간을 계산해 극을 꾸민 느낌,

그래서 끊기는 느낌이 없는 그런 느낌을 받았다. 그만큼 배우들은 자연스럽게 행동하고 있었다.

그 부분에서 오히려 리얼함이 살아있다고 느끼게 된 것인지 혼란스러웠다.

우리의 삶은 생각하는 것만큼 실수 없이 버벅임 없이 진행되진 않는데,

그래서 그런지 매끄럽고 어마어마하게 튀어나오는 대사들은 짜인 시나리오라는 느낌을 받게 된 것이다.

자연스럽기 때문에 현실감 있는데, 말이 너무 많아서 대사 같은 느낌

 

감독은 연기자가 그들의 행위와 움직임의 전반적인 타이밍과 페이스를 다른 연기자,

그리고 세트나 로케이션 장소의 다른 요소들과 연관 지어 결정하고 인지할 수 있는 특정 행위를 결정하는데

(출처 : 민병록, 이승구, 정용탁 공저 영화의 이해』, 집문당, 2005, p147)

 

연기력에 대한 부분은 의도한 것인지, 어색한 것인지 구분하기 쉽지 않았다.

대신 앞서 이야기 했듯 일관적인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 신경 쓰이지 않았다.

배우가 피사체화 되어서 프레임 아웃이 되었다가 다시 프레임 안으로 들어오는 등

카메라는 배우를 찍고 있다기보다는 그냥 그 공간 안에 들어가 그들과 함께 숨 쉬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파리의 독립문이 보이는 도로 한가운데에서도 카메라는 두리번거리기만 할뿐 위치의 변화로 장면을 분절시키지 않는다.

 

누벨바그의 젊은 영화감독들이 나타내고 싶어 한 것은 1950년 이후의 생활양식을 그대로 보여주는

학생들의 다락방, 친구들의 작은 공동아파트, 카페, 라탱 지역이나 셍제르멩 지역,

오랜시간 담소를 나누는 테라스, 연주회장, 극장, 영화관 같은 공간들이었다.

이런 공간들을 통해 예전의 영화들이 무시했던 실생활의 진실을 드러내면서 관객들에게 참신하고 신선한 인상을 주었다.

거의 항상 야외에서 모든 영화를 끝낸 트뤼포처럼, 누벨바그에게 거리는 숨쉬기 위해서였다. (Jean Douchet, 1998:"la rue")

고다르의 많은 영화들에서 주요 공간으로 나오는 길이나 거리들역시 이런 새로운 도발적 선택에 따른 것이지만,

이들 공간들에서는 고다르의 미학적 관점과 연결된 좀 더 심층적인 의미망을 찾아 볼 수 있다.

중략

<네 멋대로 해라>는 기존의 스튜디오 촬영을 벗어나 주제가 거리 예찬이라고 할 정도로 도로와 시가지라는 공간이 영화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중요공간으로 등장하고, 이들 공간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다양하게 제시되면서 누벨바그의 공간미학을 따르고 있다.

(출처 : 어순아, 이용주 공편 장 뤽 고다르의 영화세계』, 성신여자대학교 출판부, 2011, p154)

 

 

 차 안에서의 장면도 기술적인 부분에서의 한계도 물론 있었겠지만, 사람이 탔을 때 볼 수 있는 장면들로만 구성이 되어있다.

그래서 카메라도 하나의 등장인물로써 이야기 흐름 안에 있다고 착각하게 만들다가 컷이 분할되고 배우와 눈이 마주치면서 거리두기를 해나가는 것이다.

이 카메라의 시선을 만드는 데는 기술의 발전이 한몫 했을 것이다.

인공적인 조명 없이도 카메라의 시야 확보가 충분했기 때문에 전체적인 그림도 담을 수 있고 좁은 공간에서의 몰입도 가능했던 것 같다.

물론 카메라 포지션상의 위치변화가 거의 없이 패닝만으로 이루어 졌다고 해도

실내에서 충분한 광량이 확보되지 않으면 배우들의 동선이나 컷들의 구성 자체가 자연스럽지 못 할 수도 있는데,

그런 부분에서 조금 자유롭게 촬영된 것 같다.

 

https://youtu.be/UoICuMPOWrk

카메라의 눈이라고 하면 다큐로서 가장 이상적인 장면을 구성했던 지가 베르토프의 키노아이가 생각나겠지만,

여기서는 카메라의 눈이 곧 감독의 눈이기도 하고, 관객의 눈이기도 하다.

고다르의 영화에서는 관객이 영화를 보고 있음을 끊임없이 상기시키는 다양한 방식을 시도하는데,

대표적인 장면은 배우가 카메라를 직시하는 장면이다. 카메라는 감독이 의도한 바를 투영하면서

동시에 관객과 이어주는 매개체이기도 하다. 카메라의 시점은 곧 관객의 시점이 된다.

 

영화에서 모든 장면은 반드시 일정한 시점에서 찍힌다. 그리고 이 시점이 그 장면의 일부이고,

본질적으로 분리 될 수 없는 요소이다.

누군가의 시점이 개입하지 않은 순수한시선이라는 것은 불가능하다.

(출처 : 앨런 스피겔 지음, 『소설과 카메라의 눈』, 도서출판 르네상스 , 2005, p154 / <미국 소설의 시대> p88 재인용)

 

고다르의 영화에서 카메라의 시점은 감독의 시점도, 관객의 시점도 아닌 카메라 라는 등장인물의 시점 같았다.

그러나 그 시점에는 감독이 보여주고자 하는 시각적 요소가 포함되어 있어 카메라의 시선 자체가 고다르의 시선이고,

스크린을 통해 보게 되는 관객의 시선인 것이다.

 

음향 역시도 있는 소리를 그대로 들려주고 있다 보니 지금 보면 아무렇지 않게 느껴지지 않는다.

60년이 지난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만들어진 소리를 입히지 않은 것만으로도 현실감을 충분히 제공하고 있다.

대신 속삭이는 듯 한 느낌이 드는 장면이 많아서 자막으로 볼 때는 문제가 없지만 자막 없이 보는 사람들은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궁금하다.

 

 

누벨바그와 장 뤽 고다르 (1)

 

누벨바그와 장 뤽 고다르 (1)

 고다르는 영화 현장에서 조감독을 거쳐 감독이 된 누벨바그 이전의 감독들과 달리 시네필에서 영화 비평가를 거쳐 직접 메가폰을  들게 된 누벨바그 탄생의 주역이다. 이미 그는 기존의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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